목차
1-1. ‘트리거 워닝’은 무엇이고 ‘콘텐츠 워닝’은 무엇인가요?
1-2. ‘국내 영상물 심의’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1-3. ‘면책 조항’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2-1.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지향하는 ‘안전한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2-2.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과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어떤 연관성을 갖나요?
who: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누가 작성해야 하나요?
for whom: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의 대상은 감상자인가요, 창작자까지도 포함하나요?
how: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나요?
5-1.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어떤 형식이어야 하나요?
5-2.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얼마나 자세해야 하나요?
5-3.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의 대상은 내용일까요, 표현일까요?
5-4.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트리거’가 될 수도 있을까요?
5-5.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when: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언제 작성해야 하며, 어느 시점에 감상자에게 전달되어야 하나요?
where: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어디에 게시해야 하나요?
그 밖의 문제들
8-1.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고지로 끝나나요? 다른 후속 조치를 필요로 하나요?
8-2. 어떠한 소재가 트리거 워닝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이 해당 소재에 대한 부정적 낙인이 될 수 있지 않나요?
8-3. 트리거 워닝을 하느니 다른 연출, 다른 표현 방식을 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8-4. 트리거 워닝이 자기검열의 잣대가 되지 않을까요?
8-5. 너무 유난스러운 건 아닌가요?
8-6. 만약 창작자가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을 기재하기 않기로 결정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1. what: ‘트리거 워닝'은 무엇인가요?
‘트리거 워닝’이란 작품이 감상자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 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를 포함할 때 이를 감상자에게 보이기 앞서 제시하는 안내문을 말합니다. 이때 감상자가 겪을 수 있는 부정적 반응(불안, 공황 등의 심리적, 신체적 반응)은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만이 아닌 경험하지 못한 대상, 사건에서 촉발될 수도 있으며, 감상자가 인지하고 있는 트라우마가 아니라 인지하지 못한 기억을 환기함으로써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1-1. ‘트리거 워닝’은 무엇이고 ‘콘텐츠 워닝’은 무엇인가요?
공연예술 작품은 텍스트나 단순히 풍경화된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다양한 감각적 요소(가령 조명, 공간 감각, 사운드, 후각 등)들로 채워지고 구성됩니다. 이러한 공연예술의 특성 상, 감상자가 필요로 하는 사전 정보는 생각보다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감상자에게 알러지, 천식, 광과민성 간질 등 감상자의 신체적 건강에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트리거 워닝’이 필요한 내용적 요소뿐만 아니라, 때로 포그나 큰 소리, 눈부신 조명 등 감상자에게 즉각적 충격을 가할 수 있는 감각적 매개요소들이 안내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가령 공연 중 식음료를 제공하거나 후각적 자극을 위해 향료를 사용한다면, 해당 물질에 민감한 감상자가 존재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알레르기 유발 물질의 유무를 사전에 고지해야 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이런 요소들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는 사전 안내를 일컬어 ‘콘텐츠 워닝’으로, 그중에서 정신적, 정서적 장애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경고하는 안내들을 특정하여 ‘트리거 워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느슨한 분류에 따르면 ‘트리거 워닝’은 ‘콘텐츠 워닝’이라는 넓은 범주에 속하는 하위 범주입니다.
<aside> 💡 ❝옥스포드 사전은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을 “글이나 영상 등의 작품이 트라우마 또는 부정적 경험을 떠오르게 만듦으로써 독자, 시청자를 자극할 수 있는 콘텐츠 요소를 포함할 때, 시작부에서 제시하는 진술문”으로 정의합니다. 교수자를 위한 트리거 워닝 가이드를 제공하는 워털루 대학교의 경우, 트리거 워닝을 “충격 유발의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기에 앞서 공유하는 진술문”으로 정의하면서 이러한 콘텐츠에는 “성적 학대, 자해, 폭력, 섭식 장애 등”이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를 토대로 살펴본다면, 당초 페미니즘 진영에서 시작되어 교육계에서 활발하게 쓰였던 트리거 워닝이라는 단어는 트라우마를 자극하거나 불안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주제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시몬스 대학교가 게시한 ‘청소년 데이트 폭력 인식과 예방을 위해 사서들이 참고할 수 있는 안내서’에서는 트리거 워닝과 유사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바꿔 사용할 수 있지만 다소 다른 성격을 가진 용어로 ‘콘텐츠 워닝’을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콘텐츠 워닝은 **“책이나 영화의 내용을 감상하기 전에 감상자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즉, 트라우마와 PTSD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요구에 초점을 맞춘 트리거 워닝에 비해 보다 폭넓은 범주를 가진 용어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트리거 워닝과 콘텐츠 워닝의 카테고리에 대해 연구한 「Typology of content warnings and trigger warnings: Systematic review」의 경우 역시, ‘트리거 워닝’과 ‘콘텐츠 워닝’이 다양한 학문에 걸쳐 혼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연구에서 콘텐츠 워닝의 하위 유형으로 트리거 워닝이 분류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해당 논문에서 보다 폭넓고 일반적인 용어로 ‘콘텐츠 워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aside>
그러나 이러한 분류 중 ‘콘텐츠 워닝’은 명확히 규정되거나 합의되지 않은 채 모호하게 사용되고 있는 여러 용어들('콘텐츠 워닝’, '콘텐츠 경고’/넷플릭스, ‘소재 주의’/웹툰, ‘민감한 콘텐츠 경고’/트위터 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기준점으로 삼은 것입니다. 저희 연구팀은 여러 이유에서 ‘트리거 워닝’을 대체할 보다 좋은 용어를 찾고 있습니다. “민감한 콘텐츠 경고”나 “관람 주의가 필요한 콘텐츠 안내” 등의 제안이 있었습니다만, 아직까지 최선의 용어를 도출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문답에서는 ‘트리거 워닝’과 ‘콘텐츠 워닝’이라는 용어가 가진 여러 층위와 개념적 한계를 견지한 상황에서 맥락에 따라 해당 용어들을 선택하거나 병기하고자 합니다.
1-2. ‘국내 영상물 심의’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시행의 주체와 목표가 다릅니다. 국내 영상물 등급제는 법률에 근거한 심의 주체(전문위원)와 심의 기준이 존재하기에 강제성을 띠며 그 목적도 윤리성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건전한 창작물을 양성하고, 관람가를 통해 시청을 제한함으로써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연령의 범주에 따라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콘텐츠의 수위가 있다고 상정하여 제재하는 것입니다.
반면 공연계에서 활용되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창작진이 자발적으로 작품을 검토하고 감상자에게 제시하는 안내문으로서 법적 강제성을 띠는 것은 아닙니다. 영상물 등급제는 연령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감상자들을 구획하여 동일하고 균질적인 집단으로 상정한 후 이들이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임의적으로 지정하고 제한합니다. 반면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의 목표는 창작진이 관객의 다양성을 인지하고 관객 스스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심사와 규제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 극장을 안전한 공간으로 구축하기 위한 자체적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3. ‘면책 조항’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면책 조항이란 법적 책임과 비난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술문을 일컫습니다. 같은 기술문이라 하더라도 이를 고지하는 목표와 태도에 따라 그 가치와 형태는 판이할 수 있습니다. 만약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을 면책 조항으로서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은 자못 달라질 것입니다. “이를 고지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책임이 종료되는가?”, “콘텐츠 워닝이 공유되는 시점은 언제여야 할까?” 협력 단체와 진행했던 우리의 인터뷰에서 매번 등장했던 논의 중 하나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면책 조항으로 변질되거나 오해되는 경향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실례로 공연이 시작된 후 관객의 항의, 요구에 의해 뒤늦게 콘텐츠 워닝을 고지하거나, 예매가 끝난 이후 급작스럽게 이를 제시하는 공연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프로듀싱 단계의 후반부(홍보물 제작 단계)에 PD의 제안으로 어떤 것을 고시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도 현재 트리거 워닝이 면책 조항으로 이해되거나 최소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앞서 다루었듯 우리가 지향하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관객, 더 나아가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가는 창작진의 안전을 위하여 제안하는 장치입니다.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의 시작이 서로의 안전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었다는 것을 계속하여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홍보물에 기재하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만이 아닌, 관람 중, 관람 후의 관객을 생각하는 후속 조치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작품을 마주하기에 앞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제시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고 해결할 것인가의 질문을 향해있어야 합니다. 요컨대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책임을 면제받기 위한 안내가 아니라 오히려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약속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2. why: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왜 필요한가요?
모든 감상자는 예매 전 공연의 정보를 보다 정확히 전달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한번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을 박차고 나서기가 매우 어려워지고, 감상자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공연에 의해 야기된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공연에 관한 특정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여 감상자에게 해당 객석이 ‘안전한 공간’임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합니다.
2-1.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지향하는 ‘안전한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트리거 워닝은 “1980-90년대 페미니즘 진영에서 발전한 실천으로서, 폭력의 세부적인 내용이 크게 알려지기 전에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자기돌봄과 공동체 돌봄을 위해 고안된 도구”로서 트리거 워닝에는 “논쟁적인 화두를 검열하거나 피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제한적으로나마 어떤 대화에, 공동체에, 배움의 장소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고 또 제공받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이야기하는 ‘안전한 공간’은, 위험하거나 상처를 줄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말소되거나 멸균된 ‘무균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을 바라보거나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공간, 이야기를 하고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일시적인 공동체가 되겠다는 약속, 그 과정 중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단순히 배제하거나 탈락시키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이 지향하는 ‘안전한 공간’이란 가장 취약하고 연약한 이도, 상처가 많고 힘듦을 겪는 이도 찾아오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열린 객석일 것입니다.
2-2.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과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어떤 연관성을 갖나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넓은 의미에서 일종의 '배리어 프리’ 장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배리어-프리 또한 객석에 동질의, 동형의 몸과 마음이 아닌 다양한 몸과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들 모두의 접근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일련의 체계라는 점에서 두 개념은 상통하기 때문입니다. 공연예술계에서 ‘배리어-프리’, 즉 장애 접근성에 대한 논의는 주로 물리적인 편의시설의 유무(객석까지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지, 공연장 근처 화장실은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지, 공연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이 제공되는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이 이루어지는지 등)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여기서 트리거 워닝은, 접근성 논의의 대상이 되는 장애 유형에 불안 장애, PTSD 등 관객이 호소하는 반응을 일종의 병리적 현상, 심리적/정신적 장애로서 포함하고자 합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자동문이 접근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처럼,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 또한 작품이 발생시키는 시공간에 대한 접근의 편의를 제공합니다.
때로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작품으로 들어오는 문턱을 높여 관객을 쫓아내는 긴 경고의 목록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저희 연구팀은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을 통해 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객석으로 찾아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3. who: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누가 작성해야 하나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창작진 책임자의 관장 하에) 공연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작성하되, 공연의 내용과 표현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이 작성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트리거 워닝을 작성해본 외부 경험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 일을 위해 창작진 안에서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 전담 인력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인력에게만 관련 업무와 책임이 부과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4. for whom: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트리거 워닝/콘텐츠 워닝의 대상은 감상자인가요, 창작자까지도 포함하나요?